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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순투 칼럼

우리가 역사歷史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Dosuntu 2024. 7. 3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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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역사歷史'라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역사를 떠올리면 어떤 인상이 먼저 떠오를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교과목으로서의 역사라면 어렸을 때 지독하게 이해도 안 가면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 연대기를 외워야 했던 암기과목이 떠오르는 이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나는 이과였어.'라는 한 마디로 역사와는 깔끔하게 담을 쌓고 살아온 이도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역사를 좋아하던 친구를 떠올리면 어딘지 모르게 방과 후에도, 쉬는 시간에도 역사책만 내리 볼 것 같은 '역사 오타쿠'의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한다. 성인이 된 후에는 어떤 계기로 특정 나라, 특정 시대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며 천천히 인문학이 가져다주는 순수한 재미로서의 역사를 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란 처한 입장에 따라 꽤나 멀게 느껴지기도 하는 분야이지만, 역사라는 단어 앞에 '00의' 라는 수식어구를 갖다 붙이는 순간, 역사는 그야말로 우리가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에 존재하고 있는 대상이었단 걸 발견하게 된다. '위스키의 역사', '골프의 역사', '도자기의 역사' 등 사물에 관한 역사에서부터 '철학사', '미술사', '건축사'와 같이 여러 대학 전공 수업에서도 빠질 수 없는 기초 교양과목에는 반드시 해당 역사 수업이 들어있다.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물리법칙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역사가 없는 대상은 없다. 다만 역사의 길고 짧음이 있을 뿐이다.

 

박물관 해설사로 활동하면서 일주일에 최소 서너 번씩 박물관을 드나들고 있다. 짧게는 100년, 길게는 1만여 년 된 인류문화유산을 가까이하며 이 유물들 자체에 대한 표면적인 설명을 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선사하는지 그 시의성時宜性을 탐구하기 위해 고심한다. 그런데 관람객이 이렇게 심사숙고深思熟考한 결과물을 제대로 흡수하려면 역사를 대하는 태도나 입장, 역사라는 것을 바라보는 관점의 주파수가 어느 정도는 해설하는 이와 결이 같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더 나아가 역사를 적극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려고 한다.

 

이번 글에서는 여러 역사들 중에서도 특히 '인류의 역사'로 범위를 좁혀 논해보려 한다. '인류'라는 대상은 다소 포괄적이긴 하나, 한국인으로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올바로 아는 것이 왜 중요한 지에 초점을 맞추고 시작하겠다.

 

0. 역사란 무엇인가

 

동일한 제목의 저명한 역사책이 있다. 애드워드 핼릿 카의 저서인데, 두께는 얇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본문에서 역사를 알아야 할 이유를 논하기 전에 무엇을 역사라고 생각하는지 학문적인 접근보다 좀 더 와닿는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려보겠다. 

 

제일 먼저, 역사는 기억의 싸움이다. 발생했던 사실 그대로를 옮겨 적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인간은 자기 주관이 다 다르고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 차이도 발생하기 때문에 순도 100%의 객관성을 견지한채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완벽한 역사가 아닌, 조금 더 사실에 가까운 역사를 인식할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역사관이 필요하다.

 

기억을 바로 잡는 것은 정체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인간의 정체성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바로 기억이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태세우스의 배'라는 논쟁이 있다. 변화와 동일성을 논하는 문제인데, A라는 배를 구성하는 부품이 만약 1만 개이고, 1만 개의 부품 중 1개를 수리했다고 가정하자. 그 배는 여전히 A라고 주장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다음 번에는 1개가 아닌 100개를 수리하고, 그다음번에 다시 1,000개를 수리하고, 또다시 10,000개를 수리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리를 거듭해 기존의 A라는 대상의 구성요소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면 여전히 A를 A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아침에 거울을 봤을 때, 거울 속의 나는 얼굴이 약간 부어있기는 해도 '어제의 나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어제와 오늘이 다르므로, 구성요소로 봤을 때 완벽히 동일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같은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은 바로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억이라는 연결고리가 내 정체성을 규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반대로 생각하면 인간은 기억을 잃었을 때 그 정체성을 상실하기도 한다.

 

기억이라고 하는 것이 개인의 기억에서 국가와 사회와 같은 더 큰 집단의 기억으로 확장됐을 때, 그 집단의 기억을 '역사'라고 부른다. 그래서 내가 속한 국가의 역사를 올바로 아는 것은 곧 내가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일이며, 어떤 관점을 가지고 지난 기억을 되돌아볼 것인지 해석하는 문제는 '사관史觀‘의 영역이나 이는 다른 글에서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이제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서술해보겠다.

 

1. 방향성의 문제

 

여행과 삶은 닮았다. 여행을 하는 동안, 삶을 사는 동안 인간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에 누워있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지구는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내가 어느 시점에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해서 사물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제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 상황을 가정해 보자. 여행지에서 '어디로' 떠날지 결정하기에 앞서 우선 정해야 하는 것은 '어디에서' 출발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목적지만 알아서는 방향을 알 수가 없다. 출발지가 어디인지도 함께 알아야 비로소 방향을 알 수 있다. 운전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GPS가 알아서 잡아주니 간과하기 쉬웠던 출발점을 설정하는 일이 실제 삶에서는 누군가 나를 대신해 알아서 정해주지 않는다.

 

물리학에서는 크기만 가지는 스칼라량이 있고 크기와 방향까지 모두 가지는 벡터량이라는 게 있다. 속력은 스칼라량, 속도는 벡터량이다. 같은 거리를 시속 50km로 운전해서 가든, 100km로 가든 속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란 존재에게 목적지에 '남들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삶은 끝나기 때문에 속력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이고, 무의미한 속력에 방향까지 고려한 속도를 지향하는 인생이 중요하다.

 

인생은 자칫 잘못하면 방향이 빠진 스칼라량이 되기 쉽다. 방향성이 부재된 인생은 외부의 자극이나, 타인의 주관에 휘둘리기 쉽다. 똑같은 하루 스물네 시간을 살아도 뚜렷한 내 주관대로, 나의 방향성을 바라보며 사는 것은 매일 같은 '일상'이 아닌 '인생'을 살 수 있는 첫걸음이다.

 

그렇다면 출발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기원'에 대한 실마리는 역사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느 나라의 사람인가? 내가 속한 나라는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 시점에 이르렀는가? 와 같은 존재론적인 질문에 스스로 완성도 높은 대답을 할 수 있게 됐을 때 비로소 목적지로 향하는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에 한 순간에 얻을 수는 없지만, 그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희미했던 방향성이 점점 선명해지는 과정이기에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2. 현재라는 시점의 부재

 

엄밀한 의미에서 현재라는 시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라고 입 밖으로 내뱉는 그 순간에 이미 과거 시점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만을 다루는 학문이 아닌, 현재를 다루는 학문이기도 하다. 현시점을 제대로 살아내려면 과거를 잘 알아야 하고, 과거를 잘 알고 있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기본자세이다.

 

3. 더 나은 의사결정의 근거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꽤 도움이 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통시성通時性과 공시성共時性이다. 통시성이라는 것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나타나는 사물의 변화 경향을 뜻하고, 공시성이라는 것은 특정 시기의 성질을 일컫는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과 그 다양성만큼이나 여러 변수들이 존재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인간의 본성이 극적으로 다른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일정한 경향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연구가 필요한 대상이 있다면 그 대상의 시간의 경과에 따른 통시성을 파악한 뒤, 특정 시기에는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 공시성까지 파악하고 나면 의사결정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내 경험에만 의존해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경험칙經驗則의 범위를 확장시켜 주고 사고의 깊이를 깊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역사의 힘이다.

 

4. 시스템의 운영체제 역할

 

우리가 사용 중인 컴퓨터는 하드웨어만 있어서는 작동할 수 없다. 바로 시스템을 운영할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가 깔려있는지, 유닉스 기반의 맥 OS가 깔려있는지에 따라 작동방법이 달라진다. 똑같이 이진법에 의해 작동하는 컴퓨터이지만 어떤 운영체제가 설치돼 있는지에 따라 사용하는 방법이 아예 달라지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몸을 사용하기에 앞서, 어떻게 사고하고 움직일지 결정하는 뇌에 장착하는 운영체제가 바로 역사관이다.

 

유년기에서 청소년기까지 이어지는 교육의 본질은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세상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나 저변의 태도에 대해 장착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기계로 치면 기계를 어떻게 굴러가게끔 만들 건지 메커니즘을 장착하는 일일 것이다. 컴퓨터에 시스템 운영체제를 설치하는 일이다.

 

인생이란 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자신만의 분야에서 경험치를 집대성하고 세계관과 자아를 정립해 존재(영혼, 자아)가 거주할 집을 건축하는 과정이라면, 마땅히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할 줄 아는 것은 인간존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자 기쁨이고 행복일 것이다. 만약 누군가의 입장과 타인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진 창을 통해서만 세상을 본다면 극히 치우친 한 면만 보게 되는 것이며, 이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를 다루는 학문이고, 학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사관史觀은 어떤 모양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내가 직접 짓고 있는 집에 남이 만들어 둔 작고 색깔 있는 창을 끼워서 볼지, 아니면 품은 들어가겠지만 직접 커다란 투명창을 만들어 이를 통해 조금 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이기에 바른 사관의 선택은 존재의 주체성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5. 맺으며

 

"넌 꿈이 뭐니?"

"행복하게 사는 거요."

 

인생에서 건강과 행복 모두 중요한 가치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가끔은 이 사회가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에만 시선을 돌리게끔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미시적인 시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소시민적인 삶의 굴레에 갇힐 수 있다. 생계의 유지라는 기본에 충실하되, 눈앞에 보이는 세상 그 너머를 생각하는 것, 나와 내 가족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지향할 줄 아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진 이들이 많아진다면 대한민국호號의 향방이 더 올바른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인생은 한 번 뿐이기에 육신의 안녕과 쾌락만을 최고선으로 삼는 것은 일차원적이다. 특히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삶의 방식은 그 대척점에 있는 존재의 가치를 망각하는 지름길이다. 물질의 소유보다 높은 가치는 '나'라는 존재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존재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나와 국가의 존재에 대한 탐구 과정에서 혹시 왜곡된 역사를 발견했다면, 내가 그릇된 세계관 속에서 평생을 살았다면, 그 갇혀있던 틀을 깨고 나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진실된 역사를 새롭게 인지함으로써 존재의 근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가능하고, 이는 곧 왜곡된 자아를 회복하는 일이다.

 

출발점을 알아야 목적지를 설정할 수 있다. 기원에 대한 인식 없이 목적지만 설정하려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방황하게 되고, 이런 담론 자체를 못하도록 누군가 제도적으로 깊숙이 훼방을 놓았다면, 그 방해의 손짓이 단순 과거에 국한되지 않고 현재에도 그런 세력이 있다면 유무형의 교란대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경계하는 것이 새 그릇에 새 정신을 담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시간은 기본적인 속성은 연결성이다. 나의 앞선 행동은 다른 행동의 동기가 되고, 명분을 제공한다. 인생이 100부작 드라마라면, 전반부 이야기를 빼놓고 마지막 회 결말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지금 서 있는 곳을 제대로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탄탄한 역사인식 속에서 모색하는 것, 이것이 바로 모두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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