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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타이완 매거진, '이매진'
궁락향기宮樂響起, 궁중음악이 울려퍼지다::대만고궁박물관 특별전 본문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이지타이완의 정윤재 대표입니다. :)
오늘 들고 온 주제는 다름 아닌 '음악'입니다. 고궁박물관의 103호 전시실은 문헌자료실인데요.
다른 전시실들이 주로 궁궐 내 장신구나 도자기류, 서화, 청동기, 옥기 등 실존했던 물건을 전시한다면 103호는 서적 자체를 전시하는 방으로서, 활자를 통해 명(明)과 청(清)의 면모를 알아보는 전시실입니다.
최근 103호에서 열렸던 전시 제목을 보면 '궁궐 건축도(23.11.18-24.05.19)', '단오절 풍습(24.06.01-24.08.25)', '청 공주의 존재와 역할(24.09.07-24.12.01)', '왕의 하사품(25.03.22-25.06.08)' 등이 있었는데요. 이와 같은 주제들은 서적 상의 정보만으로도 해당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고, 문헌뿐 아니라 관련된 실제 유물까지 같이 배치해 관람객의 이해가 쉬웠던 반면, 이번에 등장한 '궁중음악'은 청각이 바탕이 되는 분야이기에 문헌만으로 상상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실에는 당시 실제 사용했던 악기가 단 한점 밖에(그나마도 전체가 아닌 일부분) 전시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때문에 이지타이완의 매거진을 통해 사전지식을 습득한 뒤 상상력을 충분히 동원하셔야 전시를 이해하시는 데 더욱 도움이 되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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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이란 무엇인가?
국악(國樂)은 글자 뜻 그대로 '국가의 음악'입니다. 한국인이 사용하면 한국음악을 가리킬 것이고, 중국인이 사용하면 중국음악을 뜻하겠지요. 『조선왕조실록』이나『중종실록』에서도 국악이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오늘날 한국인에게 국악이라 하면 대부분은 '한국음악'의 줄임말로 인식하는데요. 그렇다면 한국음악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한국땅에서 한국인이 연주하는 음악을 한국음악이라고 한다면, 국내 음악대학에서 교육하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 또한 한국음악의 범주에 포함되는가라고 묻는다면 갸우뚱하실 겁니다. 음악행위를 작곡행위 중심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연주와 감상행위를 중심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죠. 가야금이나 거문고로 연주한 비발디의 <사계>를 두고 이를 서양음악과 한국음악 둘 중 어느 범주에 넣는 것이 타당할 지 가늠해 보면 역시 흥미롭습니다.
때문에 '국악'이란 한국 땅에서 이루어지는 음악행위 중 '전통음악'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전통이란 것이 시간의 세례를 얼마나 받았는지에 따라서도 '짬순'은 있기 마련이라, 조선 후기의 음악보다는 고려의 음악이 '더욱 전통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악=전통음악'은 아니라, 국악의 범주에는 창작국악이나 퓨전국악, 국악가요등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오늘 다룰 전시주제에서 '국악'이란 예로부터 계통을 이루어 전해 내려오는 음악 중에서 '궁정宮廷음악'으로 한정을 하겠습니다.
궁중음악(宮中音樂) 기초
조선 궁중음악에 대한 이해는 명청 궁중음악을 이해하는 데 기본 바탕이 됩니다.
기본기부터 익혀본 뒤, 전시품을 살펴보겠습니다. 핵심만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주제로 바로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1. 조선 궁중음악의 개념과 종류
(1) 정의 : 국가의 공식 의례, 제례, 연회에서 연주된 음악으로서, 유교 이념에 따라 국가질서를 유지하고 왕실 권위를 높이며, 조상 숭배와 충·효의 도덕을 음악으로 구현했습니다.
(2) 분류 : 궁중음악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 구분 | 설명 및 특징 | 예시 |
| 아악(雅樂) | 제례·의식용 음악으로서 엄숙·정중함이 특징이며,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 (feat. 송宋) | 종묘제례악, 문묘제례악 |
| 당악(唐樂) | 연회 음악. 비교적 화려. (feat. 당唐 ·송宋) | 낙양춘, 수보록 등 |
| 향악(鄕樂) |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 궁중·민간 모두 사용 | 보허자, 여민락 |
2. 궁중악기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던 악기에는 무려 100가지가 넘는 종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는 한국 고유의 향악기와, 중국에서 들여온 아악기의 계통이 있습니다. <국립국악원 공식누리집>에는 55개의 전통악기의 3D 모형을 볼 수 있고, 각 부위별 명칭도 상세히 알 수 있으니 우측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gugak.go.kr/ency/search/modelList)
| 분류 | 대표 악기 |
| 관악기(吹管) | 피리(향피리, 당피리), 대금, 소금, 생황, 적(대나무 플루트) |
| 현악기(絃樂) | 거문고, 가야금, 해금, 아쟁, 비파 |
| 타악기(打擊) | 편종(쇠종), 편경(돌경), 장구, 북, 박(박수치는 도구), 축(음악 시작 알림), 어(음악 끝 알림) |
*아악(종묘제례악 등)에는 주로 편종·편경과 같은 의례용 악기가 사용되고, 향악(여민락, 보허자 등)에서는 향피리, 대금, 해금, 장구 같은 토속악기가 중심.
3. 연주 형태와 방법
(1) 연주 형태
* 합주(合奏) : 관현악(管絃樂) 형태로 연주. 피리·대금·해금·장구가 중심을 이루는 작은 편성부터, 아악에서는 편종·편경 등 대규모 편성까지 다양.
* 가무악 일치(歌舞樂一致) : 음악과 노래(가), 춤(무)이 함께하는 종합 예술. 종묘제례악의 일무(舞)가 대표적.
(2) 연주법
향피리: 관악 합주의 주도, 길게 뻗는 음을 많이 사용
해금: 활로 양 줄을 문질러 연주, 소리가 높고 맑아 선율을 잘 드러냄
아쟁: 큰 활로 굵은 줄을 켜서 낮고 웅장한 음색
편종·편경: 일정 리듬에 맞춰 의식 진행을 알림
박, 축, 어: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기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보는 음악의 역할
그렇다면 인간에게 '왜' 음악이 필요했을까에 관한 질문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제일 흔하게 접하는 장르인 '가요'는 인간에게 흥을 돋워 희로애락의 감정을 더욱 증폭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데요.
주변을 살펴보면 음악은 개인뿐 아니라 여러 종교 의례에서도, 국가 행사에서도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회에 가면 찬송가가, 절에 가면 목탁에 맞춰 염불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현충일이 되면 국립현충원에서 추념식을 비롯해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데요, 식순이 [개식,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묵념, 헌화 및 분향, 추모 공연, 추념사, 현충의 노래 제창 등]으로 구성된 것만 보아도 역시 음악이 차례마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큰 네 가지 의례를 두고 '관혼상제'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성년례(남성이면 관례冠禮, 여성이면 계례笄禮), 혼례, 상례, 제례를 뜻합니다. 이들은 각각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기념하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며, 죽음과 관련된 의식을 통해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의례에서 빠지지 않고 함께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음악입니다.
음악의 역사성,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다음의 질문들을 먼저 제시한 뒤,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1) 동아시아에서 음악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2) 고대에서 음악이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
(3) 음악이 국가 통치에 필수적이었는지,
(4) 음악이 신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5) 음악과 종교, 음악과 국가권력의 불가분 관계에 대해 다각도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1) 동아시아에서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됐는가?
1) 원시 단계
사실 음악은 문명 이전, 인류가 소리를 내어 리듬을 만들던 시기부터 존재했다고 봐야 합니다. 동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며, 이미 신석기시대의 骨笛(골적, 뼈피리)가 발견되어 최소 약 7,000년 전 의례나 신앙과 연관된 소리 사용을 보여줍니다. 한반도에서도 청동기 시대 고인돌 주변에서 발견된 방울, 가락지 형태 유물들이 의례용 악기의 흔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2) 역사 기록으로서의 음악
한국(고조선·삼한)과 일본(야마타이코쿠, 야마토 시대)도 의례·축제에서 음악과 춤(巫覡)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 일본서기 등에 남아 있습니다. 중국은 『서경(書經)』과 『예기(禮記)』 같은 고대 경전에서 이미 음악(樂, 樂律)을 국가 의례 질서의 핵심으로 언급합니다.『주례(周禮)』에는 “六樂” (6종의 큰 음악)을 관장하는 관직 체계가 기록되어 국가가 음악을 제도적으로 운영했음을 보여줍니다.
(2) 고대에서 음악은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가?
1) 의례·종교적 역할
가장 먼저 신에게 올리는 제사(祭祀)에서 필수적이었습니다. 음악과 춤은 신령을 기쁘게 하거나, 신과 소통하는 통로였습니다.
예를 들어 『예기』 <악기(樂記)>에는 “음악은 신에게 바치는 바요, 음악을 통하여 마음을 고르게 하여 천지의 조화를 따른다.”
라고 되어 있어 음악이 종교·우주론과 직접 연결됩니다.
2) 사회 질서 유지
공자가 특히 강조했듯, 음악은 ‘덕(德)을 교화하는 도구’ 로서, 백성의 마음을 다스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논어』 <술이>에는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할 바를 알지 못하고,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 바를 알지 못하며, 음악을 배우지 않으면 조화를 알지 못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3) 공동체 결속
농사·사냥·수확·건축·전쟁 등에서 노동요(작업가), 승전가 등은 사람들의 단결과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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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음악은 국가 통치구조에서 반드시 필요한 도구였는가?
앞서 궁중음악의 종류에는 아악, 당악, 향악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아악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종묘제례악'이 있습니다. 국가의 기반을 세우는 의식 행위에서 음악이 동원됐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종묘제례악은 국가의 정통성과 조상 숭배를 음악으로 구현한 사례로서, 고려·조선의 종묘·사직 제례악, 궁중 연례, 연향(宴享)에서 음악은 국가 의례의 핵심이었습니다.
중국·일본등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에서도 음악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통치의 도구였습니다. 주周에서는 아예 “六官六事(육관육사)” 체계 중 하나가 ‘大司樂(대사악)’으로, 음악을 통해 백성의 마음을 교화하고 예악(禮樂)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국가 책무였습니다.
일본의 경우 궁중음악을 '가가쿠(雅楽, ががく)'라고 부릅니다. 한자로 읽으면 '아악'이고 아악은 본래 중국의 예악에서 온 개념이지만, 일본에서 '아악'이라고 하면 '당악(唐樂)‘과 '고려악(高麗楽, 고마가쿠)'를 포함한 용어로서, 연주와 무용에 사용된 궁중음악 전체를 포괄하는 용어입니다. 7-9세기 동아시아는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던 때입니다. 당악은 당송시대에 일본에 전파됐고, 고려악은 고려의 음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백제+신라+발해]의 음악을 아우르는, 한반도와 그 북부에서 전래된 음악을 통틀어 부르는 일본식 용어인데, 일본에서도 역시 고대로부터 국가행사에 음악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음악은 신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었는가?
본질적으로 그렇습니다. 초기에는 음악과 무속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 음악과 무(舞, 춤), 주(酒, 술)로 신을 불러들여 소통하려 했습니다. 샤먼(巫覡)이 북·피리·종(鈴) 같은 악기를 사용해 신을 청하고, 신의 뜻을 받는 의식이 동아시아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주례』에는 “以樂降神(음악으로 신을 내리게 한다)” 는 구절이 나오기도 하죠.
(5) 음악과 종교, 음악과 국가 권력의 불가분 관계
1) 종교와 음악
동아시아(한국·중국·일본) 전통에서 음악은 ‘天人合一(천인합일)’ 관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음악을 통해 우주의 조화를 모방하고 신과 연결되며, 의례 음악은 종교적 실천 그 자체였습니다.
2) 국가 권력과 음악
제왕(帝王)은 예악(禮樂)을 바로 세우는 자로서 천명을 받고 통치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왕은 반드시 음악을 주재해야 했고, 이를 통해 신과 백성 사이를 매개했습니다.
(1)~(5)를 정리하면, 동아시아에서 음악은 원시 신앙과 함께 태동했고, 곧 국가가 의례를 통해 제도화하며 종교·통치의 필수 도구가 됐습니다. 음악은 신과 소통하고, 백성을 교화하며, 국가의 정당성을 드러내는 매개였습니다. 그래서 음악과 종교, 음악과 권력은 동아시아 고대에서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전시 둘러보기 (1) 편종과 편경

이제 국악에 대한 이해는 쌓았으니, 전시품을 몇 점 살펴보겠습니다. 위 그림의 좌측 상단을 보시면 꺽쇠괄호 '<'처럼 생긴 물건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형태의 악기가 보이시나요? 반대로 우측 상단에 보시면 크기가 서로 다른 종들이 역시 대롱대롱 달려 있는 악기가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악기가 편경(編磬), 오른쪽이 편종(編鐘)인데요. 의례의 시작을 알리는 악기가 편종, 끝을 알리는 악기가 편경입니다.
편종과 편경은 온도와 습도의 영향을 받지 않아, 다른 악기들의 음을 잡아주는 표준음 역할을 하는 악기였는데요. 이 편경을 이루는 단 한 점이 이번 전시에 나왔는데, 사진 보시겠습니다.

그런데 이 편경 조각을 보고 있으면 다소 심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보시다시피 편경 재료인 돌의 색깔이 탁합니다. 전국시대의 것(기원전 약 3세기)이라고 하니 지난 세월의 무게가 스며든 것일까요? 하지만 좋은 옥은 시간이 지나도 그 빛이 변하지 않습니다. '문묘악기도설'에 그려진 편경의 모습(18세기)을 봐도 구조물들이 화려하다기보다는 단순한 편에 가깝습니다. 왕실에서 사용된 악기들은 소리 뿐 아니라 그 외형에서도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기 마련인데 말이죠. 한편 조선의 편경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중국의 편경보다 훨씬 더 화려하지 않나요? 그런데 이 편경, 어떻게 복원할 수 있었냐면, 바로 사료가 남아있는 덕분입니다.
"국악사전"에서 발췌한 편경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시면요 :
1116년(고려 예종 11)에 송(宋)으로부터 유입된 아악기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석경’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1425년(세종 7)에 경기도 남양에서 경석이 발견되면서 예조(禮曹)에서 옥인(玉人)을 보내 경석을 캐오도록 한 후 시험 제작을 하였다. 세종대왕의 명을 받은 박연이 1427년(세종 9)에 경(磬) 열두 개짜리 석경(石磬) 한 틀을 처음 제작하여 올렸다. 1426년(세종 8)부터 1428년(세종 10)까지 총 528매의 경을 제작해 궁중에서 치르는 다양한 제사에 사용하였으며, 세종대왕은 이때 제작한 조선의 편경이 중국의 것보다 음높이가 더 잘 맞는다고 평가하였다. 이후에도 몇 차례 편경을 제작하였으나 세종조만큼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세종대왕이 절대음감이었다는 사실, 들어보셨나요? 원래 15세기에는 표준음을 정하는 것은 중국 황제의 특권이었는데, 세종대왕은 중국 악기와 그 소리가 우리와 맞지 않는다 여겨 박연으로 하여금 한국의 악기를 제작하도록 한 것인데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 일제가 우리의 아악을 폄훼하고 폐지하여 사료 속에서만 존재했던 편경이란 악기를 악학궤범에 따라 묘사된 그림을 보고 국내에서 최초로 편경을 복원하신 분이 바로 '김현곤 악기장'입니다. 이분의 생애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를 하나 첨부해 드릴 테니 관련 영상을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1803001-001-V00003)

김현곤 선생님은 최초에 편경을 복원할 때 좋은 돌을 찾아 중국을 3년을 헤매셨다고 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지금 역사 속에 존재했던 악기를 실제로 연주할 수 있으며, 그 실물을 보기 위해 제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편경의 재료는 돌(경석, 옥의 일종)인데, 크기는 모두 동일하고 두께가 서로 다릅니다. 두께가 두꺼울수록 높은음이 나기 때문에, 하단 우측 얇은 돌부터 좌측으로 가면서 '황종-대려-태주-...'순으로 8 음계로 높아지고, 윗줄은 좌에서 우로 가면서 음이 높아집니다.
전시 둘러보기 (2) 조선국배

역시 한국인 관람객이 조금 더 관심 있게 볼 수 있는 전시품을 하나 더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조선국배(朝鮮國俳)"라는 이름의 서적인데요. '俳'라는 글자가 광대라는 뜻인데, 도척기(倒擲伎)라고 불렸던 땅재주꾼을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선국배는 조선의 예능인, 특히 곡예사나 재주꾼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책, 언뜻 보시기에는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물건이고 이름표에도 '청'이라고 쓰여있으니 꽤 오래된 서적인가 보다 하고 넘겨 짚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국배'라는 용어는 『청사고(淸史稿)』라는 책에 에 나오는 용어인데, 청의 역사서가 아닌 중화민국 때 편찬(1914-1927)된 서적으로서 1616년부터 1912년까지 296년의 청 역사를 서술한 책입니다. 즉 20세기에 편찬된 서적이라는 뜻이죠.
내용을 살펴볼까요?
(우측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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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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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18쪽 가운데에 보면 '청 태종이 조선을 평정했다'는 내용도 보이는데요. 이건 청의 2대 왕 홍타이지의 병자호란을 일컫는 내용입니다. 대만의 국립박물관이 왕실음악을 주제로 특별전을 기획하면서 이웃국가를 17세기 청의 관점을 그대로 빌려 '변방국'(四裔, 또는 四夷)이라는 하위범주로 묶은 것도 모자라 조선의 음악을 소개하는 자리에 궁중음악인 종묘제례악이 아니라 광대들의 음악을 소개하는 대목을 펼쳐놓은 것은 그 의도가 다소 불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만섬으로 쫓겨온 뒤 70여 년이 훌쩍 지난 세월이 흘렀지만 이번 특별전 기획자의 의중에는 여전히 인식의 지평이 전근대국가인 청에 머물러있나봅니다. 그래도 이 책은 외국의 음악이나 의례를 기록한 문서라는 점, 각 악기의 정확한 당대 치수와 구조등을 서술했다는 점에서 일말의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겠다 하겠습니다.(옛다-!)
나가며
이번 편에서는 대만국립고궁박물관의 궁중음악 특별전에 대해 분석해 보았는데요.
음악이 역사 속에서 한 국가를 통치하는 질서를 만들고 백성들을 교화하는 수단으로 쓰였을 만큼 위대한 힘을 지녔다는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내 귀에 들어오는 음악이 단순히 음률을 가진 음파의 행적이 아닌 내 마음과 영혼을 주무르는 힘을 가진 대상이니 아무 음악이나 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경계심과 더불어 좋은 음악을 골라서 들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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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국립고궁박물관] 도슨트 투어 한국어 가이드 고궁박물원 해설 : 이지타이완
[이지타이완] 쉽고 편한 대만여행의 시작, 이지타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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