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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타이완 매거진, '이매진'
흑과 백의 싸움, 그 너머의 이야기 :: 기인익사(碁人弈事), 대만국립고궁박물관 바둑특별전(上) 본문

전시 제목 : 기인익사(碁人弈事)
부제 : 고대 바둑 문화
전시실 : 대만국립고궁박물원 북부본원 202,208,210,212호 전시실
전시기간 : 2025.07.12-202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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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지타이완의 정윤재 대표입니다.
요즘 한국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바둑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걸 느끼신 적 있으신가요?

2014년 방영된 드라마 <미생>에서는 프로기사의 길을 포기한 장그래가 직장이라는 또 다른 전장에서 바둑의 사고법으로 생존해 가는 이야기로, '수 읽기'의 세계를 사회생활의 은유로 풀어냈습니다. 2022년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는 송혜교가 맡은 문동은이 복수를 위해 착실히 포석을 깔아가는 과정이 마치 바둑판 위 돌 하나하나를 놓아가는 양상과 닮았습니다. 또 올해 개봉한 영화 <승부>에서는 바둑계의 전설 이창호와 조훈현이라는 실존 인물의 바둑 대결을 중심으로 승부의 세계에 깃든 감정과 인간관계를 그렸습니다.
이처럼 바둑은 단순한 보드게임을 넘어, 인간 관계와 삶의 전략, 나아가 심리의 흐름까지도 은유하는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유사한 전략 게임들과의 비교를 넘어, 동아시아 문화 속에서 바둑이 갖는 철학적·미학적 위상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나 체스와 달리, 바둑은 초반의 포석 단계에서부터 중반의 전투, 종반의 수습에 이르기까지 전체 판세의 흐름을 읽는 유연한 사고가 요구되며, 이는 개인의 성정(性情)과 사유방식, 나아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까지 드러내는 일종의 정신 수양이기도 합니다. 바둑에는 승패를 뛰어넘는 수양적 가치가 깃들어 있으며, 이 때문에 고대 중국에서는 군왕이나 고관대작이 반드시 익혀야 할 네 가지 교양(琴棋書畫, 거문고와 바둑, 그림과 서예) 중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기(棋)’는 단순한 기예를 넘어 인간의 사고와 전략, 그리고 우주 질서에 대한 은유로 작동해 왔습니다. 예컨대 바둑의 흑과 백 돌은 음양의 대립을 상징하며, 이들이 서로를 얽고 푸는 과정은 곧 천지의 운행과 유사한 조화를 이룹니다. 돌 하나를 놓는 행위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전체 맥락을 읽고 다음 열 수 십 수를 고려하는 ‘결단’이며, 이는 곧 인간이 매 순간 마주하는 선택과 책임의 무게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둑이라는 게임이 마작이나 서양의 체스와 어떻게 다르며, 왜 지금 이 시대에도 바둑이 주는 가르침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해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바둑이란 무엇인가?

바둑은 흑과 백, 단 두 색깔의 돌로 361개의 교차점이 있는 바둑판 위에서 영역을 두고 겨루는 고대 동아시아 보드게임입니다. 기원전 요(堯)임금 때 창안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고대에는 천문과 지리, 병법, 심리학을 모두 포괄하는 고급 지식의 총체로 여겨졌습니다.
바둑의 기본 규칙
▪ 목표: 상대보다 더 넓은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승리 조건입니다. 체스처럼 ‘왕’을 잡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이고 지혜롭게 ‘공간’을 운영하는지가 중요하죠.
▪ 진행 방식: 흑이 먼저 두고, 그다음 백이 번갈아 착수합니다.
▪ 포위와 사석: 돌을 사방에서 포위하면 상대의 돌을 ‘죽인다’고 하며, 이는 체스의 포획과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바둑은 한 수가 전체 국면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복합적입니다.
▪ 끝맺음: 양쪽 모두 더 이상 둘 곳이 없다고 판단되면 끝이 나며, 사석과 공배를 제외한 진영의 넓이를 계산해 승패를 가립니다.
체스와의 비교: 전쟁이냐, 외교냐

체스의 규칙
8×8 정사각형의 체스판에서 두 명이 말을 번갈아 이동시켜 ‘킹’을 먼저 잡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말은 기물별로 이동 방식이 다르며, 졸(폰), 기사(나이트), 비숍, 룩, 퀸, 킹으로 구성됩니다. 각 말의 가치가 숫자로 환산 가능하며, 중앙 장악과 킹의 보호가 기본 전략입니다.
바둑과 체스의 가장 큰 차이점
| 항목 | 바둑 | 체스 |
| 목표 | 영역 확보 | 상대 왕 제거 |
| 말 종류 | 돌 1종 (흑/백) | 6종류의 기물 |
| 시작 위치 | 매번 다름 (빈 바둑판) | 고정된 배치 |
| 전략 | 공간 전체를 고려 | 특정 목표물(킹)을 중심으로 |
| 계산법 | 국면 전체를 직관적으로 판단 | 수읽기와 계산에 의존 |
즉, 체스가 명확한 목표를 향한 전면전의 시뮬레이션이라면, 바둑은 다양한 갈등이 얽혀 있는 복잡한 상황에서 협상, 양보, 포위, 탈출까지 고려한 정치적 게임에 가깝습니다. 체스는 “죽이거나 죽는다”는 제로섬에 가깝고, 바둑은 “당신이 이기는 동시에 나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는 게임입니다.
마작과의 비교: 확률과 운의 게임

마작의 규칙
136~144개의 패(牌)를 가지고 4인이 즐기는 게임입니다. 중국, 일본, 대만 등 지역에 따라 규칙과 용어가 다릅니다. 패를 모아 족보를 완성하면 승리하며, 이는 포커와 유사합니다. 상대가 버린 패를 취하거나, 자신의 순서에 패를 뽑아 족보를 완성해 나갑니다. 다양한 조합의 족보와 점수 체계가 있으며, 운과 심리전, 기억력이 결합된 복합적 게임입니다.
| 항목 | 바둑 | 마작 |
| 인원 | 2명 | 4명 |
| 운 요소 | 거의 없음 | 상당히 많음 |
| 진행 | 판 전체가 공개됨 | 패는 비공개 정보 포함 |
| 전략 | 직관+전략의 집합체 | 확률+기억+심리전 |
| 철학적 메시지 | 삶의 균형, 우선순위 | 상황판단과 적응력 |
바둑은 ‘수 읽기’와 직관의 예술이라면, 마작은 ‘읽히지 않는 척’하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승부수를 띄우는 게임입니다. 마작에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지만, 바둑에서는 그 어떤 우연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두는 수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철저한 자기 책임의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바둑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균형’과 ‘관계’의 철학
오늘날 우리는 매일 선택하고, 갈등하고, 결과를 감내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럴 때 바둑은 다음과 같은 철학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 양보 없이 얻는 승리는 없다.
바둑에서는 ‘전체를 다 가지겠다’는 욕심은 독이 됩니다. 상대에게 작은 곳을 내주더라도 큰 판을 운영하는 게 중요합니다. 인생에서도 그렇지요. 손해처럼 보이는 일이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 관계는 포위가 아닌 균형이다.
바둑의 돌은 혼자선 살 수 없습니다. 사활(死活)의 논리는 돌들의 ‘연결’을 통해 완성됩니다. 타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죠. 독립성과 협력의 조화가 살아남는 전략입니다.
▪ 종국의 순간을 예측하는 힘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은 끝을 먼저 상상합니다. 어떻게 끝날지 안다면, 지금 어디를 두어야 할지 결정이 쉬워지죠. 우리 삶도, 커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를 명확히 그려야 방향이 보입니다.
마무리하며
바둑은 단순한 게임이 아닙니다. 그것은 흑과 백이라는 양극 사이에서 무수한 ‘회색의 선택’을 고민하는 철학의 장이자, 각자 자기 돌을 놓으며 생존과 공존의 해법을 찾아가는 전략의 수업입니다.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에서 바둑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대만국립고궁박물원 특별전에서 수 천년 간 이어져 오는 바둑의 숨결을 느껴보세요. 여러분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세계가 얼마나 깊은지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대만국립고궁박물관] 도슨트 투어 한국어 가이드 고궁박물원 해설 : 이지타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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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솎아보기
전시는 총 7개의 소주제로 나뉩니다. 바둑을 두는 주체별로 나누어 '황제와 장군들, 문인들, 수도승, 궁궐여인' 로 나누고, 또한 '바둑과 관련된 서적, 바둑과 유사한 보드게임, 현대 대만 바둑계의 실적'으로 나뉩니다.
(1) 황제와 장군

작품 개요
▪ 제목: 明皇會棋圖 (명황회기도, "당 현종의 바둑 모임도")
▪ 작자: 傳 周文矩 (전 周文矩, 10세기 오대십국 남당 시대 화가)
▪ 형식: 수직권 (手卷), 비단에 채색
▪ 시대: 오대십국기 南唐 (937–975)
작품 설명
「명황회기도(明皇會棋圖)」는 중국 오대(五代) 말기 남당(南唐)의 궁중 화가 주문거(周文矩, 10세기 활동)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궁중 생활을 묘사한 두루마리 회화입니다. 현존 작품은 원본이 아닌 송대 혹은 이후 시대의 필사본으로 추정되지만, 원작의 구도와 인물 배치, 묘사 방식은 충실히 계승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 회화는 구체적으로 당 현종(玄宗, 재위 712–756)이 궁정에서 신하들과 함께 바둑을 두는 장면을 담고 있어, 회화사뿐 아니라 바둑사, 궁중 생활사 연구에서도 중요한 시각 자료로 간주되고 있는데요.
이 그림의 중심에는 두 인물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습니다. 황제를 상징하는 인물은 권위를 상징하는 장삼을 입고 있으며, 상대방은 약간 낮은 위치에 앉아 공손하게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다수의 시종, 문인, 무관, 악사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들은 바둑 대국을 관람하거나 연주를 하거나, 혹은 담소를 나누는 등 저마다 역할을 수행하며 정적인 궁중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한 '바둑을 두는 장면'을 넘어, 궁정 문화의 향유와 예술적 교류, 그리고 위계질서 속에서 펼쳐지는 여가 활동의 일면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은 매우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황제는 진지하면서도 여유로운 표정을 띠고 있으며, 대국자는 신중한 자세로 수를 읽고 있습니다. 관람자들 중 일부는 바둑판을 응시하며 몰입해 있고, 어떤 이는 서로 소곤거리며 해설을 주고받는 듯한 모습입니다. 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지적인 승부로서의 바둑이 당시 지식인과 권력자들에게 어떠한 가치를 지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바둑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제왕의 통치 철학과 전략적 사고 능력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었던 것이죠.
한편, 공간 구성도 매우 치밀합니다. 실내는 치밀하게 장식된 병풍과 고급 가구, 벽면 장식으로 채워져 있으며, 장식물의 패턴과 질감 묘사는 궁중의 호화로운 생활양식을 생생히 전하고 있습니다. 건물 구조와 실내 장식은 당대 혹은 남당 궁정의 실제 모습을 반영하거나 이상화한 것으로 보이며, 문화사적 단서로서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회화의 예술사적 가치 중 하나는 ‘도상(iconography)’과 ‘이데올로기’를 연결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즉, ‘황제가 바둑을 두는 장면’은 단순한 휴식 장면이 아니라, 군왕이 문화적 교양과 전략적 사고를 겸비한 이상적인 제왕이라는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구축한 것인데요. 문인들과 함께 지적 승부를 벌이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황제의 정치적 정당성과 통치의 합리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셈입니다.
또한 앞서 기술했듯 바둑판은 우주를 형상화한 것으로 자주 해석됩니다. 19 x 19 줄의 격자판 위에서 흑과 백의 돌이 균형을 이루며 펼쳐지는 싸움은, 음양(陰陽)의 대립과 조화를 상징하고, 질서와 혼돈, 계산과 직관, 통제와 유연함이 교차하는 공간입니다. 그러한 공간 위에 앉은 황제는 곧 우주 질서를 조율하는 존재이며, 바둑은 그러한 존재의 지혜를 시험하는 상징적인 장치가 되는 것이죠.
이 작품은 따라서 단순한 궁중 오락을 묘사한 그림이 아니라, 정치적·철학적 의미가 응축된 작품입니다. 이 회화를 통해 우리는 고대 중국에서 바둑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인간관계, 권력 구조, 사유 체계와 긴밀히 얽혀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림 속 황제는 단지 바둑을 두는 사람이 아니라, 바둑을 통해 세상을 읽고 다스리는 자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측면은 바둑이 지닌 '놀이 이상의 힘'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명황회기도」는 예술사적으로 정교한 궁중 인물화인 동시에, 바둑이라는 고대 지적 게임을 매개로 한 통치 이념과 문화 권력의 시각적 구현물입니다. 이 회화를 감상하는 일은 곧 황제의 사유 공간에 들어가 그의 정신세계와 대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바둑판 위의 한 수는 결국, 세계를 향한 통찰이자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문인


▪ 제목: 九老圖 (구로도, Nine Elders)
▪ 작가: 黃彪 (황표, 명나라 화가)
▪ 형식: 수묵담채 / 권본 (手卷, handscroll)
이 그림은 제목 그대로 아홉 명의 노인이 자연 속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다정한 대화, 바둑, 풍류, 술잔치 등 문인들이 즐기던 활동들이 정적인 필치와 함께 표현되어 있죠.
시대적 배경: 명대 문인의 자화상
황표가 활동했던 명대 중기후기(약 15~16세기)는, 사회적으로는 비교적 안정된 시기였으나 정치적 부패와 억압이 문인 사회를 깊게 짓눌렀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대적 현실 속에서 문인들은 스스로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은둔과 탈속, 즉 자연 속 삶에 대한 동경을 더욱 강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그림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며, 실제로 《구로도》는 단순한 '노인들 모임'이 아닌, 속세를 떠난 도가적 이상향을 그린 상징적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회문화적 맥락
이 작품에서 보이는 아홉 노인은 실제 역사적 인물이라기보다는, 당시 지식인들이 동경하던 삶의 태도_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 고요함 속의 풍류_를 형상화한 인물군입니다.
특히 명대의 문인들은 관직을 떠나거나 낙향한 뒤, 소규모로 교류하며 "시·서·화" 삼절을 즐기곤 했는데요. 이와 같은 모임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자기 정체성과 저항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도상학적 특징: 그림 속 상징을 읽다
▪ 자연과의 융합: 화면 전체를 관통하는 요소는 바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입니다. 소나무, 죽림, 석류나무,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 등이 배치되어 있어, 인간 활동이 자연의 리듬과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활동의 다양성: 노인들은 단순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바둑을 두고, 시를 읊고, 차를 끓이며, 술을 나누는 등 다양한 문인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휴식의 이미지가 아니라, 지속적인 정신의 교류와 풍류의 강조를 보여주는 도상입니다.
▪ 복식과 태도: 인물들은 모두 명대 문인의 복식을 입고 있으며, 정중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대의 이상적 신사상(紳士像)을 반영합니다.
역사학적 의의
《구로도》는 명나라 문인 계층의 자아 정체성과 문화적 이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회화입니다. 또한, 이 작품은 단순한 회화작품이 아니라, 당시의 사유방식과 정치적 무력감, 그리고 탈속적 이상을 시각적으로 기록한 시대의 문화기록물로서 의의가 있습니다.
(3) 승려와 신선

작품 정보
▪ 제목: 壽翁對弈 (수옹대혁, '장수한 노인들의 바둑 대국')
▪ 작가: 孫祜 (손호, 청대 중기 화가)
▪ 형식: 채색 화첩 중 한 장면
▪ 시대: 청대(18세기 전후로 추정)
작품의 도상 해설
화면 중심에는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노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바둑을 두고 있습니다. 그 주변으로는 여러 명의 노인이 둘러앉거나 서서 관전하고 있는데요, 이들의 모습은 단순히 여흥을 즐긴다기보다, 지혜와 장수를 상징하는 행위로 해석됩니다. 바둑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심신 수양과 전략적 사고를 상징합니다.
노인의 다수 등장은 이 작품이 단순 인물화가 아닌, 장수와 덕을 기원하는 길상화(吉祥畵) 임을 시사합니다. 배경은 간결하지만, 화면 오른쪽에 보이는 꽃이 꽂힌 도자기 화병은 삶의 여유와 정신적 풍요를 암시합니다.
시대적·사회문화적 배경
청대 중기 이후, 궁정화와 문인화가 분화되는 가운데 ‘길상화(吉祥畫)’가 하나의 중요한 회화 장르로 자리 잡게 됩니다. 특히 황실과 상류층에서는 생일, 축수, 입관, 진급 등 다양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그림이 유행했으며, 《만수도책》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제작된 축수용 회화첩입니다. 이 장면은 그중에서도 장수(壽)의 이상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단순히 나이 듦을 넘어 ‘덕 있는 삶’과 ‘지혜로운 노년’을 이상화한 것입니다.
역사적 의미
《수옹대혁》은 단지 ‘노인이 바둑 두는 그림’이 아니라, 장수(壽), 덕(德), 지혜(智), 평화와 여유(和靜)라는 당시 사회의 이상적 가치들을 하나로 응축한 상징적인 이미지입니다.
(4) 궁궐 여인


▪ 제목: 漢宮春曉圖 (한궁춘효도, ‘한궁의 봄 새벽’)
▪ 작가: 仇英 (구영, 1494?~1552, 명대 화가)
▪ 형식: 권본, 채색
▪ 시대: 명대 중기
작품 해석: 궁중 속 일상과 여성의 세계
이 작품은 한나라 궁궐의 봄날 아침 풍경을 그렸다는 설정 아래, 실제로는 명대 여성의 궁중 생활을 이상화하여 재현한 것입니다. 그림 속에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이 묘사되어 있으며, 장면마다 세심한 구성이 돋보입니다.
주요 도상 요소
▪ 상층 좌측: 여인들이 수를 놓는 장면. 궁중 여성의 기술과 인내를 상징합니다.
▪ 상층 우측: 아이와 놀아주는 장면이 보이며, 이는 ‘다산’과 ‘가정적 이상’을 상징합니다.
▪ 하층 중앙: 여성들이 긴 비단을 들고 지나가며 왕실의 섬세한 의식 절차를 암시합니다.
▪ 하층 우측: 악기와 책을 접하며 교양 활동에 집중한 모습은 ‘문예적 이상’과도 연결됩니다.
전체적으로 여성들이 각자의 역할 속에서 차분하고 조화롭게 움직이는 모습은 궁중 내 여성이 단순한 소속원이 아닌 문화의 중심임을 시사합니다.
시대적 배경과 회화적 특징
구영은 명대 “절파(浙派)”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오파(吳派)”의 섬세하고 우아한 회화 전통을 이어가며 궁중 장면, 역사 고사, 미인도 등을 전문적으로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절정기 스타일로, 정교한 건축 구조의 묘사, 화려하면서도 통일감 있는 색채 구성,
여성 인물의 얼굴 표정과 자세 표현의 세밀함이 특히 돋보입니다.
여기서 잠깐! 비교해서 같이 볼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청 정관붕의 한궁춘효도인데요. 명 구영의 작품을 모방한 그림입니다.


| 구분 | 구영(仇英)의 《漢宮春曉卷》 | 정관붕(丁觀鵬)의 《漢宮春曉圖》 |
| 시대 | 명대 중기 (16세기) | 청대 강희~건륭제 시기 (18세기) |
| 화풍 | 오파(吳派) 중심의 섬세한 묘사 | 궁정화가답게 화려하고 상징적 |
| 분위기 | 실제 일상을 보는 듯한 서사적 흐름 | 기하학적 구도와 정적인 길상적 이상세계 |
| 인물 묘사 | 표정과 자세가 다양하며 생활감 있음 | 이상화된 미인형, 정형화된 구성 |
| 건축 표현 | 궁중 건물의 구조와 원근을 실감 나게 표현 | 대칭적이고 장식화된 구도 |
| 목적 | 문인적 감상용, 궁중 일상 재현 | 황실의 권위와 화려함 강조, 축수용 |
정관붕의 작품은 황실의 요청에 따라 제작된 경우가 많아 길상화(吉祥畵) 성격이 강하며, 구영의 작품은 현실에 기반한 세밀한 묘사와 인문적 정취를 강조합니다. 인물 하나하나의 손짓, 눈길, 옷자락까지도 유의 깊게 보신다면, 그림 속 ‘침묵의 이야기’가 들릴 것입니다. 감상 포인트는 같은 제목을 지닌 두 시대의 작품을 비교하며 보신다면, 시대의 가치관과 미학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여성의 삶을 단순한 미(美)가 아니라 역사적 주체로 기록한 회화, 구영의 《한궁춘효도》. 궁중의 하루는 곧 시대의 이상이며, 여성들의 삶은 그 이상을 이끌어간 주인공이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에서 단 한 작품만 보셔야 한다면 바로 이 작품입니다. 궁중의 찬란한 봄날 새벽을 함께 걸어보시겠어요?
+ 이번 특별전에서 <LG>, <이창호> 등 한국과 관련된 내용을 이번 바둑 특별전 전시실에서 찾아보세요!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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